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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이야기-1] 봄, 쉼 그리고 정신건강/이명수(서울시정신보건센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09.26 조회수330

봄, 쉼 그리고 정신건강

 

이명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시정신보건센터장)

 

봄이라는 계절을 이제야 비로소 맞이하게 된 것 같습니다. 약간은 나른해진 날씨에 음악을 들으며 강변도로를 달리다 보면 이대로 현실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쉼’을 누리고 싶은 생각이 사무쳐 오르기도 합니다. 물론 1초도 지나지 않아 돈은? 직장은? 등등의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되지만 말입니다.

 

'쉼'이란 무엇일까요? 육체적으로 일을 안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정신적으로 현실의 고민에서 빠져나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쉼’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 힘은 자기결정권이라는 것에 있습니다. 레저 활동 등의 무엇을 하는 것 또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을 결정하는 권한이 나에게 있다는 것이 ‘쉼’을 결정하는 결정적 요소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놀이공원에 가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이지만 자기결정권이라는 측면에서는 ‘쉼’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노동으로 다가올 수도 있으며, 객관적으로 보기에는 일이지만 그것이 온전히 자기의 의지와 동기에 의해 이루어지게 될 때, 그 일에는 ‘쉼’적인 요소가 있기도 합니다.

 

정신건강의 여러 가지 요소 중, 직무스트레스라는 것이 있습니다. 직무스트레스를 측정하는 방식 중에 직무긴장도(Job Strain Index)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요구받는 직무의 양(직무요구도), 그리고 그 직무에 대한 본인의 결정권(직무자립도)를 입체적으로 평가하는 방식입니다. 결론적으로 직무요구도가 높고 직무자립도가 낮은 경우를 고긴장 집단이라고 부르고, 고긴장 집단은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자동반사적으로 ‘또 무슨 일일까?’라는 생각이 떠오른다면 영락없이 고긴장 집단입니다. 아마도 현대사회의 구성원들은 직위가 높고 낮음을 떠나 많은 경우 고긴장 집단에 해당할 것입니다. 직위라는 것은 항상 상대적이기 마련이고 모든 업무는 조직 내에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대외적 관계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해결방법은 무엇일까요? 고긴장 상태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직업을 바꾸거나 하지 않는 이상에는 ‘주관적’ 직무자립도를 높이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적도지방에 가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노출될 수밖에 없는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 가장 효과적 방법이 예방주사를 맞는 것이듯이, 조직 또는 사회적 관계에서 부여받은 객관적 직무 권한을 어찌할 수는 없을 터, 먼저 예상하고 준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으로 스트레스 경험을 예방하는 방법입니다. 어차피 닥칠 일이니까 미리 하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예측’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자기결정권과 함께 인간의 스트레스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이 바로 ‘예측불가능성’입니다. 소시민인 우리가 우리의 스트레스 면역력을 높일 수 있는 몇 가지 안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이 예측불가능성을 최대한 줄이고 예측가능성을 최대한 높이는 일입니다. 똑같은 업무를 요구받을 때라도 그것이 내가 예측했던 일이라면 그때부터는 일 시킴을 당한 것이 아니라 일을 자발적으로 만들어나가는 자세로 임하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말을 정리하며 예측의 시간을 30분정도 가져보십시오. 출근할 때 그리고 점심시간에 예측의 시간을 10분씩 가져보시길 권합니다.

 

그런데 만약 상사라는 인간 자체가 예측불허의 사람이라면...................이 글을 전달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