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정보
고등학교 2학년, 전학
전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원래 내성적이었던 나는 반 아이들과 어울리기 쉽지 않았습니다. 먼저 말을 걸기 어려웠던 나는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혼자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친구들 앞에서는 말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수업시간에 발표라도 하게 되면 목소리가 떨려 말을 이어나가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그런 모습이 계속되자, 나중에는 내가 말을 하기도 전에 웃거나 제 목소리와 말투를 흉내 내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사람을 대하는 것에 대한 걱정은 점점 커져갔고, 저도 모르게 위축이 되었습니다. 성적도 좋지 않고, 뭐 하나 잘하는 것 없는 저를 따돌리거나 놀리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아이들의 따돌림
그러던 중 그래도 친하다 생각했던 아이가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근데 너 귀엽게 보이려고 일부러 그렇게 떠는 척 하는 거라고 하던데?"
'내 모습이 그렇게 보이나?' 사실 신경이 쓰이는 말이지만, 늘 받는 놀림이라 생각하며 그냥 넘겼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다른 아이가 비슷한 말을 하였습니다. "너 이미지 메이킹 너무 하는 거 아니야? 남자애들한테 잘 보이려고?" 이런 말을 반복적으로 듣자, 내 자신에 대해 점점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나는 어딘가 문제가 있나 보다. 다른 애들과 좀 다른가.' '이게 진짜 내 모습이 아닌가. 헷갈린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점점 불안해져 갔습니다.
평소에도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에 아예 말 자체를 하지 못했고, 눈이라도 마주치면 '왜 나를 저렇게 쳐다보지? 나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들었나?'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때로는 수업 시간 내내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도 했습니다. 나는 점점 주변 사람들의 말과 표정, 행동을 살피며 눈치를 보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수업시간에 잘 집중하지 못했으며 성적도 눈에 띄게 떨어졌습니다.
이 때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말을 했다면 좀 나아졌을까요?
2년이 지난 지금 그런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때 나는 속상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부모님께서 걱정하실까봐 집에 와서도 아무 말 없이 혼자 방 안에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도 나를 '뒤쳐지는 아이'로 볼까봐 차마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그런 나를 걱정하시며, '넌 사춘기를 유별나게 겪는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반 이동
나의 불안은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이제는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습니다. 아무도 쳐다 볼 수 없어 땅만 보고 있다가 슬며시 고개를 들면 어김없이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아, 사람들이 나를 보고 웃는구나.' 때로는 나를 비웃는 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 안이나 교실 안에서도 그런 웃음소리를 들었습니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데 어떤 소리를 듣는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특별히 어떤 생각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또 비웃는구나.' 라고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힘들면서도 우울하고, 화가 나면서도 무기력해지는 여러 혼란스러운 감정 속에서 어떻게 버텼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입시 실패 후 재수
입시에 실패하고 이듬해 초, 재수 학원에 등록하였습니다. 재수라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나의 마음 상태는 거의 까만 흙탕물 같았습니다. 이제는 매일 웃음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누구와도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3월경, 지하철을 타고 학원에 가던 중 문득, '사람들이 날 감시하는구나. 지금 날 몰래카메라로 찍고 있다.' 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한번 그런 생각을 하자 자꾸 그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이 전에 내가 겪은 상황들이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날 감시하고 있어서 지난 번에 학원 선생님께서 나에게 말을 걸었던 거구나.'
나는 더 이상 바깥 출입을 할 수 없었습니다. 방에 두꺼운 커튼을 치고 방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문자나 전화는 당연히 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들리던 웃음소리는 나를 무시하는 말이나 명령으로 변했습니다. 책을 찢으라는 소리가 들릴 때면, 가만히 있다가도 책을 찢거나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나는 처음으로 정신증을 경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