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정보
(반복해서 손을 씻으며) “저주받은 자국아, 없어져라, 제발 없어져.”
–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5막 1장 중에서]
-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에서 남편이 사촌 형을 살해하도록 부추긴 맥베스 부인의 대사입니다.
그녀는 아무리 손을 씻어도 핏자국이 지워지지 않는 것 같다며 절규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손엔 피가 묻어 있을 리 없습니다.
강박증상이 묘사된 가장 오래된 문헌 중 하나로 대표적인 강박증상인 반복적인 손 씻기를 통해 죄의식을 떨치려는 필사적인 노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감염과 같은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씻고 닦으며, 실수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여러 번 확인을 합니다.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 순서대로 정리하거나 주위를 정돈을 하기도 하지요. 혹시 필요할 수 있으니 물건을 버리지 않고 모아두기도 합니다.
이 모든 행동은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과도하게 이런 행동을 반복하거나 지나치게 몰두하기도 합니다.
이를 강박 증상이라고 합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라는 영화의 주인공인 멜빈 유달 (Mervin Udall: 잭 니콜슨 분)은 세균에 감염될까 두려워 장갑을 끼고 악수를 하고,
밖에서 식사를 할 때도 무조건 집에서 소독해온 식기로만 식사를 합니다.
이러한 공포 때문에 씻는 것에 매우 집착하는데, 한번 씻을 때면 2~3시간이 걸립니다.
같은 종류의 비누 수십 개를 열 맞춰 정리해두고 사용하며, 손을 한번 씻는데 두개의 비누를 사용합니다.
지나치는 사람과 접촉하지 않고 보도블럭의 금을 밟지 않고 걷느라 안간힘을 씁니다.
당연히 사람들과의 관계도 맺기 힘들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심한 고통을 겪습니다.
바로 강박장애 환자입니다.
강박 증상은 통상적인 사고의 흐름을 깨고 들어오는 침습적인 사고와 이에 대한 일련의 반응으로 구성됩니다.
전자를 강박사고(obsession), 후자를 강박행동(compulsion)으로 일컫습니다만, 강박행동은 행동뿐만 아니라 사고의 형태를 띠는 반응도 포함합니다.
강박사고는 분명히 스스로의 생각이지만 자신이 원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마음속에 떠올라서 스스로 이 생각을 조절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굉장히 불편하고 불안하다고 느끼게 되는데, 이런 불안을 줄이거나 해소하려는 강력한 욕구에 따라 강박행동을 반복하게 됩니다.
이러한 강박행동은 강박사고와 관련된 심리적 고통을 줄이거나 불안해하는 두려운 사건을 예방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 아닌 경우가 많으며, 관련이 있더라도 명백히 그 정도가 과도한 대응입니다.
따라서 병적인 강박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강박적’이라는 말과는 그 의미가 다릅니다.
불합리하다고 느끼지만 멈추지 않고 떠오르는 생각과, 멈춰야 하는 걸 알지만 반복하게 되는 행동입니다.
오염에 대한 공포로 과도하게 닦거나 손을 씻는 오염/청결 강박, 여러 번 점검하고 확인하는 확인 강박, 숫자를 세거나 특정한 행동을 의례적으로 반복하는 행동,
자신이나 타인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할지 모른다는 걱정을 포함하는 불안감 및 금기시되는 성적/종교적인 생각이 반복해서 떠오르는 강박,
대칭과 정확성 및 정리 정돈에 몰두하는 강박, 쓸모가 없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불필요하게 모아두는 저장 강박 등 매우 다양합니다.
스포츠 선수들이 흔히 보이는 징크스나 의례 행위도 강박 증상 중 하나입니다.
캐나다의 역대 최고 야구선수 중 하나인 래리 워커는 초등학교 때부터 33번 유니폼을 입고, 3의 배수만큼 스윙 연습을 하며,
샤워실 3번 째 샤워 꼭지를 사용하고, 결혼식도 1993년 11월 3일 3시 33분에 진행했다고 합니다.
흔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병
강박장애는 전 세계적으로 인구의 약 2~2.5% 정도에서 평생 동안 한 번 이상 경험하게 되는 비교적 흔한 병이고,
인간에게 장애를 가져오는 10질환 중 하나로 WHO에서는 보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강박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진단을 부끄러워하며 숨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스스로 과도하고 불합리하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남들에게 이상하게 보일 것이 두려워 들키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제 강박장애를 앓는 환자는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 예상되며, 발병 후 확정적인 진단을 받는데 평균 10년 이상 걸립니다.
강박장애는 유명인들 중에도 흔합니다. 유명한 축구스타인 영국의 데이비드 베컴은 음료수와 옷, 잡지 등 모든 물건이 짝수를 이루거나
일렬로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불안해서 참지 못하는 증상으로 가정 내 불화가 많았다고 합니다.
또한 20세기 초반 미국의 백만장자 사업가인 하워드 휴즈 등도 강박 증상으로 고통을 받았고, 팝아트의 선구자인 앤디워홀도 심한 저장 강박을 앓았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강박장애는 생각보다 흔하고 다양하다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아래 내용에서는 강박장애라는 질환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 강박장애는 왜 생기나요?
강박장애의 원인으로는 심리사회적, 생물학적, 유전적 요인이 다양하게 제기되지만,
이런 요인들이 최종적으로 피질-선조체-시상 회로(Cortico-Striato-Thalamo-Cortical circuit)이라는 뇌회로의 구조 및 기능 이상을 초래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심리사회적 요인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적인 측면에서 어릴 적 항문기의 엄격한 대소변 가리기 훈련이나 과도한 초자아(superego)의 힘으로 강박증상이 생긴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실제 다양한 환자를 설명하기는 힘든 이론으로 여겨집니다.
강박증상은 점진적으로 발병하는 경우도 많지만 심한 스트레스가 병의 악화와 재발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자극을 피함으로서 경험하게 되는 불안의 감소를 반복적으로 학습하게 됨으로서 강박증상이 악화된다는 학습이론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뇌 신경전달물질의 변화
신경세포와 신경세포 사이에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존재하는 신경전달물질이라는 것이 있는데, 강박장애는 세로토닌(serotonin)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부족에서 나타납니다.
전두엽 및 미상핵 부위에 세로토닌 신경계가 특히 많이 분포되어 있고, 약물에 의해 변화될 수 있습니다.
뇌 피질-선조체-시상 회로의 구조 및 기능 변화
뇌영상 연구들에서 강박장애 환자들은 피질-선조체-시상 회로와 관련된 시상(thalamus), 피각핵(caudate nucleus), 안와 전두엽(orbitofrontal cortex, 대상회(anterior cingulate) 등
영역의 구조와 기능적 활성도 및 이들 영역간의 구조적-기능적 연결성 양상이 정상인과 비교하여 달랐습니다.
이러한 강박증상 관련 뇌회로 구성부위에 손상을 유발하는 질환들,
예를 들면 시덴함 무도병, 류마티스성 열, 소아기 포도상구균 감염, 루푸스, 이코노모 뇌염, 뇌종양, 간질 등을 앓는 환자에서도 강박 증상이 나타나는 증례들이 있어,
강박증상이 뇌 피질-선조체-시상 회로의 변화와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을 더욱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 뇌의 강박회로 >
강박증상은 뇌가 딸꾹질을 하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위험이 없는데도 우리 뇌회로의 한 부분에서 불필요하게 잘못된 위험 메세지를 보냅니다.
그러면 원하지 않지만 반복된 강박사고가 떠오르고, 어쩔 수 없이 불편한 강박행동을 반복함으로써 강박사고와 관련한 고통과 불안을 지우려 시도하게 됩니다.
출처: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정신건강정보포털 (http://www.mentalhealth.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