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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공감-1] 당신은 가족의 인생에서 ...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09.26 조회수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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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가족의 인생에서 나침반이 되고 있습니까?

 

 

김연주

(제 15대 정신건강지킴이, 배우)

 

 

2003년 4월 1일, 홍콩에서 만우절 거짓말 같은 외신이 날아 들었습니다. 배우 장국영이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비보였습니다. 요즘 젊은 친구들에겐 낯설지 모르지만, 장국영은 우리 세대에겐 각별한 존재였습니다. 요즘 한류가 일본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에서 사랑 받는 것처럼, 80~90년대는 홍콩의 영화가 아시아의 스크린을 장악하고 있던 시절이었으며, 당시의 기라성 같던 홍콩 배우들 중에서도 특히 장국영은 연기력과 관객 동원력을 겸비한 보기 드문 명배우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의 갑작스런 투신 소식이라니……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유명 배우의 자살 소식은 그만큼 낯설고 놀랍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사망 9주기를 갓 넘긴 오늘…… 돌아보면 그 동안 오빠, 누나 또는 동생처럼 친숙했던 국내 연기자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비보들을 접하고, 놀라움과 슬픔을 넘어 황망한 마음이 되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유명 배우들의 자살 사건에는 반드시 ‘말 못할 개인적 사정이 있다더라’ 또는 ‘배우들은 민감한 성격이라 자살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더라’ 하는 식의 소문들이 꼬리표처럼 따라 다닙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자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부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자살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몇몇 유명 배우들만의 문제는 더욱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회 공동체적 차원에서의 예방과 대책이 시급한 사회 문제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같은 높은 자살률에 비해, 자살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응 시스템은 매우 미비합니다. 국내에서 자살이 사회 전반의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며, 체계적인 대응 시스템의 구축도 아직은 걸음마 단계입니다.

 

하지만, 사회적 인식 변화와 체계적 대응 시스템의 구축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가족의 관심인 것 같습니다. 자살의 의학적 원인으로 밝혀진 우울증을 치료하는 데에 가족의 관심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는 지구 반대편에 사는 생면부지의 건강은 밤새워 걱정하면서도, 막상 자신에게 가장 친근하고 소중한 가족의 건강에는 무심한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족보다 소중한 가치는 없다고 하겠으니, 이는 참으로 모순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배우라 하여 선천적으로 일반인보다 더 민감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배우는 직업적으로 남의 인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렇다 보니, 한 작품이 끝날 때마다 짧게는 수 주에서 길게는 수 개월 동안 대신 살았던 배역의 인생에서 탈피하여, 배우 자신의 인생으로 돌아오는 재적응 과정은 항상 고통스러우며, 때로는 진정한 자신은 누구인지에 대해 혼란을 느끼는 정체성의 위기를 겪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배우가 현실의 자신으로 돌아오는데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은 바로 가족의 관심과 사랑입니다. 즉, 배우에게 있어서 가족의 존재는 먼 바다로 나선 항해자의 나침반과 같습니다. 항해자에게 나침반이 없다면 항해 자체도 어렵겠으나, 안전하게 귀항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이란 멀고 험한 항해에서 방황하며,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 것은 비단 배우들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급속도로 파편화 되어가는 현대 사회구조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서로를 지척에서 보듬어 줄 가족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은 가족의 인생에서 나침반이 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