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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진정한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시간
작성자 블루터치 작성일 2023.07.24 조회수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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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은 어린 시절부터 경험하게 됩니다. 이사를 하거나 상급학교로 진학하면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와 헤어지고, 동생이 태어나면서 독점하던 부모의 사랑을 뺏기고 (뺏긴다고 느끼고), 남들보다 못한 건강으로 인해 일반적으로 누려야 하는 놀이와 학업의 기회를 박탈당하기도 하고, 노력과 성취의 대가로서 응당 받아야 하는 관심과 인정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티격태격하시던 부모가 갈라서면서 엄마 또는 아빠와 헤어지기도 하고, 부모의 사업 실패로 갑자기 그동안 누려왔던 안정적인 생활환경을 잃기도 하고, 조건 없이 반겨주고 놀아주던 반려동물을 무지개다리 너머로 보내게 되는 등, 생각해 보면 인생은 어려서부터 늘 상실의 연속으로 채워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상실은 가지고 있던 것을 잃는 것을 말합니다. 상실의 전제 조건은 ‘존재’입니다.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잃을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원래부터 없었다는 의미의 ‘부재(不在)’는 상실의 다른 버전일 수 있습니다. 특히, 꼭 있어야 하는 것이 없는 ‘결핍’은 상실보다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는데, 이는 가보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를 헤매는 것처럼 힘들게 찾아온 여기가 내가 가야 하는 그곳인지 확신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며,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이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만성적 공허감의 근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실은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지만 결핍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상실은 마음에서 소화되지 못하고 상처로 남아 만성적 염증반응을 일으키기도 합니다만 또 어떤 상실은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노랫말도 있듯이 성장과 독립을 위한 거름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상실의 경험은 있고 없고의 이슈가 아니라 ‘어떻게 있는가’의 문제라면, 결핍의 경험은 어떻게 보더라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차이점입니다. 염증반응을 유발하는 상실을 다수 경험하였거나 결핍의 시대를 관통하며 중년에 이른 사람들은 이미 정신적으로 커다란 소진 상태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남들보다 훨씬 큰 심리적 에너지를 사용해왔기 때문이죠. 그렇게 불태운 에너지는 간혹 큰 성공이라는 보상으로 전환되기도 하지만 또다시 아픈 상실과 결핍을 경험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집착이라는 불순물을 생성하기도 합니다. 원래부터 없던 것, 있다가 없어진 것으로부터 유발된 심적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온 지난 시간에 더하여 중년은 앞으로 더 없어질 것에 대한 고민과 걱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는 시기이며, 이 과정에서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마주하게 됩니다. 인간은 외롭습니다. 외롭지 않다고 느낄 수 있지만 그것은 외롭고 싶지 않아 발버둥을 치고 있는 행동의 일시적 결과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울의 증상에 외로움(feel loneliness)이 있지만 외로움 자체는 병적 감정이 아닌 정상적 감정의 범위에 속하며, 마치 혈압이 정상이라는 것이 혈압이 없는 것을 말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정작 문제는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취하는 방법에서 발생합니다. 외로움으로부터 기인하는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몰입하거나 탐닉하게 되면 중독의 문제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술이 그러하고 쇼핑이 그렇습니다. 외로움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누군가와의 관계를 덜어내려 하기도 하고 반대로 과도한 영향을 미치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부부관계의 권태를 극복하지 못하고 관계를 정리한다거나 배우자 이외의 사람과 과도한 욕망을 발산하기도 하며 충분히 성장한 자녀를 옭아매면서 통제하려고 하는 것들이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상황에서는 전성기를 구가하는 시기가 중년입니다. 힘들게 얻은 사회적 위치를 잃을 것에 대한 불안이 엄습해올 수 있으며, 나라는 사람 자체가 아닌 나의 상황과 조건의 변화에 따라 사람들이 떠나가지 않을까라는 염려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부모 세대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스스로의 죽음에 대한 생각도 깊어지고 확장되게 마련이며 ‘인생 별거 있어?’라며 호기를 부려보기도 하지만 순간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스스로 인지하기도 합니다. 청소년이 사춘기를 거쳐 성인기로 접어들 듯이 중년은 제2의 중간 항로를 거치면서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중간 항로는 결코 잔잔한 호수가 아니라 파도가 꽤나 강하게 치는 바닷길에 가까우며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에서 경험하는 멀미처럼 우울과 불안 등의 노이로제 증상이 생기기도 합니다. 노이로제 증상을 병리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볼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의지의 문제로만 치부하고 그냥 방치하고 놔두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세계 최고의 운동선수라 할지라도 코치는 필요합니다. 코치는 더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선수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해서 피드백 해주는 사람입니다. 중년의 어른들이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책임져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거친 바닷길에서는 현명하게 헤쳐 나갈 수 있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 역시 사실입니다. 정신건강 전문가의 존재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