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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가 알려주는 인생의 태도
작성자 블루터치 작성일 2022.08.09 조회수817


최근 오랫동안 쉬던 달리기를 다시 시작했다. 달리기를 도왔던 책,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시 읽고 나니 잊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달리기가 나에게 가르쳐준 ‘정직한 태도가 가지는 힘’을 한동안 잊고 살았다. 온전히 두 발에 의지해 몸을 움직이는 달리기는, 다른 운동의 비해 기교나 장비 팀워크가 필요하지 않는, 매일 조금씩 하는 만큼 정직하게 향상되는 운동이다. 달리기를 매일 조금씩 하다 보면 짧은 거리도 숨이 차 걷다 뛰다를 반복하던 때가 언제였나 싶게 몸의 움직임이 가벼워지고, 호흡이 안정된다. 10km 이상도 쉬지 않고 가볍게 달릴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달리기가 진귀한 깨달음을 알려준다. “무엇이든 조금씩 하면 괜찮아지는구나. 다 할 수 있는 거구나"라는 정직한 태도를 얻게 된다.


과정의 기쁨보다 결과의 기쁨을 강조하는 사회 시스템에는 결과만 좋으면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 그 누구도 과정의 노고를 친절히 물어봐 주지 않는다. 그런 환경에 오래 노출되면, 숙련자가 되기 위해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초보자의 시기’를 부끄러워하거나 숨기고 싶어진다. 하지만 모든 전문가에게는 초보자의 시간이 있다. 처음 하니까 서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흐릿한 순간이 있어야 선명한 순간이 찾아온다. 연연하지 않고 여러 번의 시도를 지속하다 보면 시도의 시간들이 겹쳐지고 겹쳐지면 선명한 무언가가 되는 것이다. 흐릿한 순간을 이겨내는 방법은 매일 무언가를 단련하는 일인데, 그중 가장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이 ‘달리기’이다. 그래서일까, 기복 없이 꾸준히 글을 써 내려가고,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을 내놓아야 하는 소설가 김연수 작가와 무라카미 하루키 모두 달리기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다.


소설가 김연수 작가의 책 「지지 않는다는 말」에서 달리기는 ‘지지 않는 것'이다. 달리기는 혼자서 하는 운동이다. 물론 마라톤 대회에서, 달리기 대회에서 기록에 따라 매기는 ‘순위'라는 것이 존재하지만, 일상에서 우리가 하는 달리기는 이기고 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귀차니즘에 지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매일 해나가는 태도에 가깝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남들보다 뛰어나야 하고, 남들보다 잘 하지 못할 것 같으면 애초에 시작하지 않을 때, 달리기는 ‘두 발만 있으면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준다. 나 역시 내 뜻대로 일이 되지 않는 날,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아 속상한 날 운동화 끈을 매고, 딱 동네 한 바퀴만 뛰자는 생각으로 밖을 나간다. 오래 쉬다 뛰어도, 내 몸의 속도에 맞추다 보면 몸은 이내 감각을 찾고 호흡도 안정화된다. 달리기 후 땀이 쭉 흐를 때, 나 스스로에게 응원을 보낸 기분이 든다. 오늘 내가 한 일이 뜻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아도, ‘괜찮아, 내가 지금 달리는 것처럼 계속 달리면 돼. 너만 포기하지 않으면 돼'라고. 혼자 하는 달리기에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느려도 발을 움직이는 것, 할 수 있는 만큼 달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루키 역시 달리기를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달리기의 이야기만큼 지분이 높은 주제는 글쓰기다. 그에게 달리기는 글쓰기를 위한 동력이기 때문이다. 영감이 떠오르든 떠오르지 않든 매일 정해진 시간이 글을 써 내려가는 과정은 사실 달리기와 많이 닮아있다. 달리기를 통해 얻은 체력과 지속력은 글쓰기의 지속력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것이다”


그의 책에서 나온 이 문장을 보고, 달리기가 우리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단련’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마음먹은 것을 잘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는 시작해야 할 이유를 거창하게 찾고 있기 때문이다. 이걸 해서 ‘뭐'가 되는지 시작도 전에 결과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대단한 무언가를 마음먹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한번 해보자 오늘' 이라고 시도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잘하지 못해서 스스로를 응원해줄 수 없을 때, 마음이 조급해 매일의 성실함을 기다려줄 수 없을 때 달리기를 시작해보자. 두 발이 가벼워지고, 호흡이 규칙적으로 변하는 순간 나 자신에게 이런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래, 달린 만큼만 오늘 해보자!’라는 자신감의 목소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