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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이야기-9] 차별과 차이/서용진(용인정신병원)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12.28 조회수407

 

'차별'과 '차이'

 

 

서용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용인정신병원)

 

 

'살아 있는 비너스'로 잘 알려진 영국의 앨리슨 래퍼 씨가 우리나라를 다녀간 적이 있습니다.

'해표지증'이라 불리는, 짧은 다리와 양팔이 없는 기형을 갖고 태어난 그녀는 생후 6주 만에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고 19살 때까지 보육시설과 병원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세계적인 구족화가가 되어 2003년 스페인 '올해의 여성상', 영국 왕실의 대영제국국민훈장, 2005년 '세계 여성상'(Women's World Awards)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나라의 모 TV와 인터뷰를 하면서 그녀는 "장애를 차별(discrimination)이 아닌, 차이(difference)로 인정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사실 이 말은 앨리슨 래퍼의 어록에 담긴 명언이 아니라, 장애인의 날 휘날리는 플래카드에 단골로 등장하던 메뉴였지만, 그녀의 입술을 통해 전달되었을 때에 훨씬 더 의미 있는 말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장애인도 보통 사람과 똑같은 존엄성을 갖고 있다고 선포하였으며, 장애인들에게는 희망의 메시지를, 그리고 비장애인에게는 관심과 각성을 촉구하였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신체적인 장애를 가진 이들의 인권과 존엄성의 문제와는 달리 정신장애인들의 인권과 존엄성의 문제는 여전히 이 사회의 어두운 구석에서 빠져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프랑스의 정신과의사 Philippe Pinel이 정신질환자도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갖고 있음을 주장한지 벌써 두 세기가 지나갔지만 여전히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정신질환자는 '위험한 사람',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뉴스에 등장하는 엽기적 범죄들은 틀림없이 '미친 사람들'의 짓일 거라 생각되고 있습니다. 최근에 인기를 끌고 있는 한 시사프로그램에서는 사회적으로 폭력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문제를 다루면서 그 가해자에 대해 거의 예외 없이 정신과적인 진단을 갖다 붙임으로써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정신질환자들이란 과연 위험하고 이 사회에서 격리시켜야만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데 아주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볼 때 정신질환자가 정신질환이 없는 사람에 비해 범죄율이 더 높지도 않으며, 더욱이 모든 정신질환자들이 이런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정신질환자에 대해 알레르기적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라면 한번 곱씹어 볼만합니다. 사실 정신질환자 중 상당수는 위험하다기보다 오히려 위축되어 사람들을 대하는 것을 어려워하며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120명의 환자가 함께 생활하는 정신과 병동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바깥 사람들이 생각하듯 병동 안에서 매일 위험천만한 사고가 벌어지고 있지도 않으며, 이를 막기 위해 특단의 대책을 세울 필요도 없습니다. 저는 가끔 (정신질환이 없다고 믿는) 보통 사람 120명을 이렇게 모아 두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을 해보곤 하는데, 제 생각으로는 다툼이나 사고가 생길 확률이 훨씬 더 높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신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은 신체장애인들에 대한 편견 이상으로 그들의 삶을 위협하고 회복을 가로막는 또 다른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차별이 아닌 차이'  이 말은 신체적인 장애 뿐 아니라 정신적인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누구도 정신적인 면에서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받아들인다면 정신장애인들을 받아들이는 것도 훨씬 더 쉬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