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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이야기-7] 아빠! 집에 일찍 좀 오면 안 되나요?/이구상(서울시자살예방센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11.06 조회수238

 

아빠! 집에 일찍 좀 오면 안 되나요?

 

 

이구상

(서울시 자살예방센터 상임팀장)

 

강연을 다니면 40-50대 중년의 여성분들을 참 많이 만나게 된다. 그 때 항상 던지는 질문이 있는데, ‘남편이 일찍 귀가 하는 것이 좋으세요? 아니면 늦게 귀가하는 것이 좋으세요?’다. 차마 강사 앞에서 늦게 귀가하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못하기는 하지만 표정은 당연히 ‘후자’라는 암묵적인 메시지를 박장대소로 보낸다. 가끔은 더욱 기발한 답변을 하기도 하는데, ‘남편이 밖에서 밥 먹고 일찍 들어오는 것이 제일 좋다’라고 이야기 한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중년에 접어든 아빠 혹은 남편은 밤늦게나 들어오는 것으로 당연 인식되고, 양육과 가정사는 모두 엄마 혹은 아내의 몫이 되어 버린 것 같아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우리의 아빠이나 남편은 그저 돈만 열심히 벌어오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일까?

 

몇 년 전으로 기억되는데, KBS “미녀들의 수다” 출연 중에 있었던 뉴질랜드 출신의 한 여성이 국내 모 신문과 뉴질랜드의 아동·청소년의 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한 인터뷰 본 기억이 있는데, 시간이 비교적 많이 흘렀음에도 그 내용이 매우 또렷하여 블루터치 뉴스레터 독자분 들에게 소개해보고자 한다.

 

30대 초반이었던 그녀가 성장했던 80년대 뉴질랜드에서의 가장 큰 사회 문제 중 하나는 아동청소년으로 특히, 탈선이나 폭력, 범죄 등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시도해보았지만 대부분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고, 그나마 많은 실패 속에서도 한 가지 희망을 갖게 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아빠를 집에 일찍 귀가 시키자’라는 캠페인이었다고 한다.

 

뉴질랜드 정부는 각 가정 내에서의 아버지의 역할을 확대하기 위한 첫 번째 방안으로 집으로 일찍 귀가 시키는 캠페인을 시작하였는데, 먼저 국가에서 통제 가능한 공공기관, 그러니까 공무원이나 국가에서 운영하는 국영 기업을 시작으로 민간 기업들의 참여도 유도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초기에는 민간기업의 반대가 심했지만 국가의 강력한 의지는 민간 기업을 굴복하게 만들었고, 아동청소년의 문제는 점차 감소추세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1980년대의 뉴질랜드도 우리나라의 현재의 실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아버지들은 새벽 일찍 나가서 자정이 지나서야 들어오고, 가끔 일찍 들어오는 날이 있었지만 오히려 이러한 분위기는 가족을 더욱 어색하게 만들기 일쑤였다고 한다.

 

이러한 아이디어에 착안해 나는 2011년 보건복지부에서 한때 열정적(?)으로 운영했던 ‘서민희망 모니터단’ 위촉식에서 ‘아빠를 일찍 보내줍시다’라는 발언을 보건복지부 차관님 앞에서 이야기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더하세요’라는 직장인 엄마와 아빠를 일찍 보내자는 캠페인을 우연찮게(?)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초기에는 직장인 엄마를 일찍 귀가시키자는 내용으로 캠페인이 진행되어 적잖이 실망했으나(엄마는 일찍 들어가라고 하지않아도 대다수는 일찍 귀가하므로..) 최근에는 아빠도 일찍 귀가하자는 캠페인이 시작되어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아동·청소년기 있어서 아빠는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 이성의 자녀든 동성의 자녀든 가치관과 정체성을 형성해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아빠는 매우 중요한 롤 모델이 된다. 어쩌면 자녀와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함께 무엇을 억지로 하려들지 않아도 아빠의 존재만으로 중요한 삶의 가치관을 자녀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 우리의 의사소통의 80%가 비언어인 것처럼 아버지가 자녀와 함께 있는 동안에 보여 지는 행동, 표정, 몸짓, 습관 하나하나에 아동청소년의 올바른 정체성과 가치관을 전달할수 있게 된다. 결국 아빠의 이른 귀가는 아동청소년의 밝은 미래를 보여주는 지표가 될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