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상세보기
[정신건강이야기-4] “서로 위로하라” 분노와 분열의 사회에서 공감과 위로의 사회로/김성수(용인정신병원)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09.26 조회수283

“서로 위로하라”
분노와 분열의 사회에서 공감과 위로의 사회로

 

김성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용인정신병원)

 

위의 슬로건은 경기도 정신보건사업의 슬로건 중 하나입니다. 사뭇 의미심장하지요? 최근까지 보건의 패러다임 하에서 건강 증진, 예방 등에 상대적 무게 중심을 실어 온 정신보건사업이 보다 포괄적이고 인문학적 담론을 지향하는 쪽으로 진보하는 것이 아닌지 느껴져 개인적으로 반갑기도 합니다. 오늘날 가장 대표적인 정신분석 학파들 중의 하나인 영국 대상관계 이론에서는, 인간 무의식의 가장 심층에 자리 잡고 있는 주제를 다름 아닌 ‘관계’라고 전제하고 있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허기지거나 춥거나 한 등의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면 그에 대한 강렬한 정서적 반응으로 자지러지는 울음을 터뜨리게 되지요. 그 울음소리를 듣게 된 엄마의 마음속에도 즉각적이고 자동적인 반응이 생겨나게 됩니다.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무언지 대단히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감정을 갑자기 느끼게 된 엄마는 다급히 아이를 안고 달래며 젖을 물리거나 기저귀를 갈아주게 되고. 그 덕분에 불편한 상황을 벗어나게 된 아기는 울음을 그치고 다시 엄마의 품속에서 평화로운 감정 상태로 돌아갈 수 있게 됩니다. 아기와 엄마 사이의 관계가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은 ‘관계’라는 주제의 원형이라는 말이지요. 그리고 모든 인간은 평생 동안 사회 속에서 다른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개인이 무언가 ‘나쁘고 고통스러운’ 정서 경험을 외부의 누군가(대상)에게 투사하고, 그것이 대상에 의해 충분히 담아내어 지고 소화되는 과정을 거친 다음, 보다 덜 고통스럽고 해독된 형태의 반응으로 다시 원래의 개인에게 되돌려지는, 대상과의 관계의 반복적 순환 과정이 인간 심성의 발달과 성숙 과정에서의 필수 요소라는 가설입니다. 이 과정이 잘 이루어진다면 그 결과로서 개인은 자신의 내면에 공존하는 미움과 사랑, 분노와 연민 등의 모순되고 강렬한 감정들을 잘 감당해 낼 수 있게 되고, 세상에는 좋은 측면과 나쁜 측면이 함께 존재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여유를 얻게 됩니다. 하지만 이 과정이 잘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불행하게도 그는 오로지 내 편 아니면 적만이 존재하는, 혹독하고 두려운 세상 안에서 다른 이들과 서로 위로를 주고받을 방법을 모른 채 자신의 생존만을 위해서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게 되지요.

 


이러한 관점은 아기와 양육자 사이를 넘어서서 개인과 그가 속한 집단 간의 관계, 작은 규모의 집단들과 그들의 집합체로서 이루어진 사회 내에서의 역동을 이해할 때에도 널리 유용하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개인에게는 그가 속한 집단 내지 사회가 한편으로는 그가 겪고 표현하는 고통을 받아내어 주는 대상으로 기능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만일 한 집단 또는 사회, 문화가 그에 속한 개인 또는 소집단의 고통과 불만을 최대한 담론화 하고 이성적으로 다루어 줄 수 있을 정도의 융통성과 관용을 가질 수 있다면, 그 구성원들은 인간 사회에 당연히 존재할 수 있는 입장의 차이와 다소 모자란 듯한 성취와 타협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호간의 배척 보다는 공존을 모색할 수 있게 되지요. 그러나 집단 또는 사회에서 그 구성원들이 호소하는 갈등을 완고하고 편협하며 때로 가혹한 방식으로 다루는 문화가 지배적이라면, 구성원들 간의 역동 역시 극단적 양상을 띠게 됩니다. 진보와 보수라는 정치적인 견해 차이가 절대로 공존 불가능하며 서로를 제거해야만 하는 적대 관계로 악화되고, 약하고 소외된 이들의 처지는 그들 개인의 책임으로 폄하되면서 각자의 생존만을 위한 무한 경쟁과 계층 간의 반목이 깊어지게 됩니다.

 


자살률의 감소, 정신건강의 증진, 행복감의 향상 등을 논하는데 있어 보건의료적 접근 이외에 보다 근본적인 사회적 담론이 필요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