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너무 우울해요. 잠이 없어졌어요. 새벽 4시에 자요. 낮잠도 안 자요. 죽을 것 같은 예감이 자주 들어요. 죽음에 대해 생각을 아주 많이 해요. 머지않아 죽을 것 같아 항상 불안해요. 밥도 잘 안 먹어요. 입맛이 없어서. 아무 것도 하기 싫고. 아무 소리도 듣기 싫고. 그냥 눈감고 영원히 안 깼으면 좋겠어요." 6일 밤. 서울시 광역정신보건센터 상담실. 잔뜩 긴장한 전문상담원들 앞에서 19인치 컴퓨터 모니터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사람들의 사연들을 쉬지 않고 쏟아내고 있었다. 상담원들의 눈빛은 인터넷 자살 상담란을 통해 한 줄 한 줄 넘어오는 문장 내용뿐만 아니라 상담자의 심리 상태까지 꿰뚫고 있었다.
"보세요. 지금 이 상담자는 문장이 간결하죠. 그리고 (타이핑) 속도도 빨라요. 이건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자살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저 '나는 잔뜩 화가 나 있다'는 신호일 경우가 많아요." 잽싸게 상대를 읽어낸 상담원 이구상(35)씨는 "이런 분들은 흥분한 원인을 찬찬히 알아낸 뒤 적절하게 달래주면 스스로 안정을 되찾곤 합니다"라고 처방을 내놓는다.
11시40분께. '띵~동.' 컴퓨터에서 느닷없이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인터넷 상담 요청이 있다는 경보음이다. 상담원 손기화(32)씨가 날 듯이 컴퓨터로 달려가 앉는다. 상담자의 IP주소를 확인해보니 5일부터 8차례 상담을 신청, 센터 상황판에도 '집중관리 대상'으로 따로 분류된 30대 남성이었다. 그는 취업을 못해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는 걸 끝내면 좀 편해지겠죠. 그러면 더 이상 힘들지 않겠죠. "
"자살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세요?"
"일주일째 내내 그(자살) 생각뿐이네요. 어젠 (죽으려고) 선풍기를 켜놓고 잤는데…."
문장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를 감지한 손 상담원은 전화 통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30대 남자는 끝내 번호를 알려 주지 않았다. 어르고 달래고 사정한 끝에 7일 사무실로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받아 내고는 겨우 상담을 마쳤다.
손 상담원은 "이 분처럼 정말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직접 통화를 하든지 아니면 만나서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가 옆에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라며 "소재파악이 안돼 출동을 하지 못할 때는 누가 죽어가는 것을 두 손 놓고 바라보는 것 같아 너무나 안타까워요"라고 말했다.
2005년 1월 문을 연 센터는 지금까지 1만여명을 상담했다. 긴급 출동은 월 20회 정도. 끝내 소재 파악이 안 돼 저 세상으로 떠나 보낸 상담자가 지금까지 4명이라고 한다.
7일 새벽까지 센터에는 부모님에 떠밀려 싫어하는 악기를 전공했다가 견디지 못해 자살을 결심한 10대, 결혼을 보름 앞두고 배신 당했다는 20대 여성, 갑작스러운 실직으로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다는 50대 중년 가장이 전화로, 인터넷으로 상담해 왔다. 죽음을 떠올릴 정도로 고통스러운 삶이지만 "그래도 마지막 끈은 놓지 말라"는 누군가의 위로와 격려를 듣고싶어 하는 불행한 우리 이웃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