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메디컬투데이/뉴시스]
사람에게 가장 힘이 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이 살아가며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것 중 하나는 사랑했던 사람의 사망을 접할 때이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병이나 사고가 아닌 그 사람의 자살로 인한 것이라면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는 상실감과 함께 심각한 죄책감이 자리 잡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런 감정들이 단순한 감정으로 그치지 않고 그 사람을 쫓아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해외의 경우 이를 해소하기 위해 자살자 가족들의 모임이 비교적 활성화돼 있는 상황. 하지만 우리나라는 뿌리 깊은 정신질환에 관한 오해가 자살자 뿐 아니라 자살자 가족들의 감정 치유까지도 어려움을 겪게 하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얼마 전 서울시광역정신보건센터가 마련한 자살자 가족 모임에는 참석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 자살, 남은 사람에게는 ‘죄책감’ 안겨
친한 친구나 가족의 자살은 남은 사람에게는 평생 큰 상처로 남게 된다. 단순히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없다는 슬픔 정도가 아니라 마치 자신의 잘못이 그 사람의 자살을 부른 것은 아닌지까지 생각할 정도로 심각한 죄책감에 빠져들기 쉽다.
자신이 조금 더 잘해줬더라면, 더 노력했더라면, 또는 조금 더 잘 키웠다면, 자살이라는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괴로움의 시간을 보내기 쉬운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은 자살을 겪은 주위 사람들이 한 번쯤 생각해 봤음직한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반응을 너무 당연히 여기거나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 껄끄러워 혼자 끙끙 앓다보면 문제가 매우 심각해질 수 있어 심각한 주의가 필요하다.
자살은 우울증 같은 정신 질환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거나 해서 치료를 받지 않아 병이 깊어져 발생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주위 사람은 이런 의학적 이유 대신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으려고 하기 때문.
경희의료원 정신과 백종우 교수는 “자살 원인의 80%는 우울증으로 보고되고 있을 정도로, 병이 있었는데 잘 모르고 치료 안 받거나 해서 자살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렇지만 대부분의 가족이나 친구는 자살이 질병의 결과가 아닌 사적인 이유나 단순한 심리변화로 인한 것이라 생각하며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자체에 대한 충격, 자책감 등으로 우울증이 생길 수 있고 때로는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즉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상실감과 함께 죄책감까지 몰려들며 우울증 때로는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것.
따라서 전문의들은 자살자 가족들의 경우 이를 단순한 심리적 문제라고 생각하지 말고 서로 얘기하고 공유하거나 병원 상담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미국에는 있고 한국에는 없다?
해외의 경우 자살자 가족들의 모임 등의 활성화로 서로 감정을 공유하면서 치유한다.
전준희 서울시광역정신보건센터(이하 광역센터) 위기관리팀장은 "자조집단에서의 지지는 유가족들이 느끼는 절망감에 도움을 주고, 나아가 그 상황을 유가족 스스로 받아들이고 극복하는데 대단히 큰 효과가 있다"며 "자살자의 유가족으로서(survivors) 고통스러운 추도일이나 슬픔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이런 모임의 활성화가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것이 전문의들의 평가다.
우리나라 문화의 특성상 일반적으로 자살이 아직까지 나약함이나 단순한 정서적 문제로 인해 일어났다고 추측하는 시선이 많아 가족이 자살을 했다는 자체를 터놓고 얘기하기를 꺼려하며, 정신질환으로 인한 결과라고 하더라도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너무 심해 가족 중 자살자가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실제로 최근 광역센터는 자살자의 유가족(survivors)에 대한 심리적, 정서적 지원을 통해 자살로 인한 추가적인 피해를 예방하고자, 유가족 자조모임을 진행했지만 정작 유가족은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관계자는 “이번에 열렸던 유가족 자조모임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가족들이 쉽게 참석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처음에는 많은 분들이 함께하지 못하겠지만 유가족 자조모임의 활성화를 위해 매달 한 번씩 모임을 개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고은 기자 eunisea@md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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